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올 여름 기이한 제목의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사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작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뒤에 개봉했다. 그것도 단관개봉. 아무래도 일반 상업 영화와는 달리 다큐멘터리인데다 국내에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래피티(벽화) 아티스트에 관한 이야기라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혹시 이 영화를 감독한 뱅시(Banksy)라는 인물을 잘 모를 수도 있다. (사실 잘 몰라도 된다.) 하지만 본 영화와 관련이 있으니 간략하게 소개해보겠다. 뱅시라는 사람은 현재 가장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자, 현대미술계를 강타한 소위 잘나가는 작가다. 정치 사회적 이슈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벽과 거리에 그리고 설치하는 영국 작가로 작업의 성격상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 하는 일종의 테러리스트인 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 뱅시를 위시한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뒤쫓는 한 카메라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티에리라는 카메라맨은 그래피티 아트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뒤쫓아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행적을 무조건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수많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담던 티에리는 저명한 뱅시에게 까지 연결이 되어 친분을 쌓고 그래서 아주 소중한 영상들을 담아낸다. 그러다 뱅시의 제안으로 지금까지의 영상들을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려는 티에리는 스스로 아티스트가 된 마냥 자신도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길 꿈꾼다. 여기서 그는 미스터 브래인워시 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자신의 인맥과 지금껏 봐온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토대로 정식 작가로 데뷔한다. 여기서 충격적인 것은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이(스스로 직접 그리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 계획 없이 기획하고 알바생들에게 명령하는 수준의 것들이) 소위 저명한 팝아트 작가들의 겉모양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앞뒤 없이 뛰어든 가짜 작가의 작품은 모두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 평단의 호평과 함께.
예술 작품의 기준이라는 것이 워낙 모호하지만, 혹은 예술이라는 것이 취향이라는 개인적인 잣대로 쉽게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 와중에도 객관적인 미적 관점과 역사적인 관점이 항상 동반되기 마련이다. 즉, 미학이라는 것이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일종의 철학이라고 볼 때, 이에 부합한 작품 혹은 이에 근거한 행위는 감히 예술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예술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현대의 예술계에서 새로운 시도나 기성세대에 대한 전복과 같이 도전적이고 신선한 작품 혹은 행위 역시 우리는 예술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연설명 역시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아무튼, 이 영화 속 주인공인 티에리,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품들은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며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다. 물론 이 역시 필자의 주관적 영역이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태생부터 이것이 진짜 예술, 진짜 고민하고 투신하여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결과물과는 거리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영화,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과 미디어의 권력에 나풀거리는 요즘 예술계의 작태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광고를 많이 한다고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많이 팔렸다고 좋은 작가라 할 수 없다. 그 작품이 비싸다고 좋다고 할 수 없다. 故백남준 작가께서는 예술이 사기라고 했다지만, 돈 벌려고, 유명해지려고 아무것이나 베껴내는, 아니, 베끼라고 시키는 행위가 예술이 될 수는 없다. 모방이 습작으로서 많은 도움은 되겠지만, 그 의도와 목적이 빗나간 순간 진짜 사기가 되는 것이다. 즉, 돈과 유명세에 가치를 두고, 누군가의 것을 베끼고 눈속임하는 것들은 예술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부동산 투기마냥 사고, 팔고 있다면, 과연 진짜 영혼이 담긴 예술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얼마 전 청담동 송은 아트스페이스에 갔다가 근처의 갤러리들을 둘러봤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오** 갤러리라는 거대한 상업화랑에서 바로 이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품을 만났다. 그것도 키스 해링과 바스키아의 작품 곁에 걸려있었다. 아, 이 허무맹랑한 작가의 말도 안 되는 작품이 얼마나 비싸게, 여기 한국에까지 와서 팔리고 있단 말인가. 필자는 그 화랑 앞에서 뱅시의 영화를 상영하고 싶을 정도였다. 과연 이 화랑은, 이곳의 주인은, 이곳의 큐레이터, 학예사, 혹은 이곳의 손님마저 이 작품, 이 작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 지 의심스러웠다. 사기와 무지가 판치는 세상임을 통감하며 한편으로 필자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품을 괜찮은 예술 작품으로 인정했을까 라고 자문했다.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무리 양보하고 다시 들여다봐도 별로다. 그리고 이런 것이 묵인되는 이곳이나 이 사람들이 별로다. 게다가 지금껏 이런 작태가 얼마나 많았을까 란 생각도 들었다. 모두 의심해야할 판이다. 斜月
